11월호 에필로그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번 달 초에 소개해 드린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어떻게 보셨나요? 아마 평소 시집을 자주 보지 않는 분들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인 만큼 윤동주 시인의 작품은 어디선가 조금씩 접하신 경험은 있으실 겁니다.
학창 시절 시를 접하실 때, 어떤 표현이 쓰였는지, 시에서 쓰인 각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 세부적으로 시를 '분석'하신 경험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
즉, 우리는 윤동주 시인의 '간결한 언어'를 알아갈수록 시를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를 하나하나 해체하며 보기보다는 그의 언어를 알기 위해 윤동주라는 인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의 시들을 찬찬히 다시 감상해보려고 합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콘텐츠를 읽어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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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삶에 대해서는 지난 번 프롤로그 콘텐츠에서 전반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가 어떠한 시대 상황에서 시인으로서 활동하고 어떤 작품들을 써왔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었는데요, 오늘은 좀 더 윤동주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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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윤동주는 당시 북간도 지역의 민족 교육의 거점인 명동 소학교에 다녔고, 이곳에서 고종사촌 송몽규와 외사촌 김정우, 문익환 등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윤동주와 이 세 친구들은 문학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새 명동>이라는 잡지까지 발간하기도 했죠.
중학교 시절에는 여러 번 학교를 옮겨다니는 일이 있긴 했지만,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새벽까지 글을 읽고 작품을 쓰며 그의 재능은 점점 꽃 피울 준비를 해갔어요. 윤동주의 열정과는 다르게 그의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 졸업 이후 의과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소 온순하던 성격과는 다르게 문학에 대해서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며칠 동안 밥을 굶기도 했다고 합니다. 끝내 그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합니다. 중학교 시절까지 일본어로 공부를 하다가 연희전문학교에서는 조선어로 강의를 들으며 역사와 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죠.
한편,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며 조선 독립을 더욱 열망하게 되었던 그는 깊은 수준의 민족 문화 연구를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이렇듯,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그의 열정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끝내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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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그 누구보다 우리말을 사랑한 시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습작 노트부터 자선 시집까지 모든 시를 한글로만 작성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검열 때문에 일본어로 출간되어야 했던 연희전문 교지 <문우>에서도 그는 꿋꿋이 한글 시를 제출합니다. 그는 한글이라는 민족의 대표 문화와 문학어가 일제의 외압에 의해 사라지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한글의 명맥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윤동주의 한글 작품들은 모두 대중들에게 소개되기는 어려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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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희전문학교 4학년 졸업반 시절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쓴 뒤, 그의 시들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자신의 첫 한글 시집을 출간하고자 했지만 출간까지 가지는 못했죠. 그럼에도 그는 한글의 소중함과 민족의 정신을 잊고 살지 않았습니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 시절 잠깐 고향에 돌아왔을 때, 동생들에게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니, 무엇이나 악보까지도 사서 모아라."라고 당부하기도 했을 정도로 한글을 지켜내는 것에 진심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희전문학교 시절에는 최현배 선생이 강의하는 조선어 수업 시간에 항상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경청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죠.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우리말로 시를 쓰는 일 자체가 이미 식민 지배를 거부하는 불온한 행위였다고 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나라 독립에 기여하신 분들이 계시는데요, 윤동주 시인은 한글로 작품을 쓰고 한글의 명맥을 이어가며 우리의 민족성을 지킨 독립 운동가이십니다. 우리도 이 점을 기억하며 그의 작품을 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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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의 친구를 보라." 윤동주의 곁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가볍게 그의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며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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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동료들 (뒷줄 좌측 윤동주, 앞줄 가운데 송몽규) ©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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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은 어린 시절 북간도 용정 명동촌에서 윤동주를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은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 숭실중학교를 함께 다닌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수려한 외모의 문익환은 윤동주와 함께 시를 쓰며 문학의 꿈을 키우던 학생이었습니다. 문익환은 훗날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히브리어에 능통한 구약 성경의 권위자로 인정 받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윤동주와 그의 친구들이 그러했듯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고 민주화 운동을 이끈 선봉장이었습니다.
송몽규는 지난 번 소개해 드린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의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으로 5살 때까지는 윤동주와 한 집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그 또한 문학에 재능이 있었지만, 윤동주와는 다른 방향으로 살았습니다. 송몽규는 중국에서 육군군관학교를 나와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입니다. 끝내 송몽규는 윤동주와 함께 1943년 7월 투옥되어 1945년에 옥중에서 사망합니다.
윤동주의 친구를 떠올릴 때, 정병욱과 강처중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서 끝내 출간하지 못했었는데요, 이 역사적인 시집이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인물이 바로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후배였던 정병욱입니다. 당시 아쉽게 출간되지 못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3부 중 한 부가 정병욱의 손에 있었고, 그는 이 시집을 일제에 발각되지 않도록 어머니께 부탁 드려 조심스럽게 보관해왔습니다. 이후 1948년 정병욱은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동기생 강처중과 함께 시집을 발간합니다. 이 둘은 민족 시인으로서 윤동주를 알리고 그의 작품의 의미를 전달한 것이죠.
문익환, 송몽규, 정병욱, 강처중, 이렇게 총 네 명의 윤동주의 친구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윤동주 시인과 친분이 있던 다양한 인물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준 몇몇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의 행보만 살펴보아도, 윤동주가 시인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얼마나 열정을 쏟아부었는지 알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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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은 아래 두 시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윤동주는 고뇌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고뇌하며 밤하늘을 바라보았고, 하늘의 별을 새며 자신의 의지를 더 굳게 다지곤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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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별 헤는 밤 전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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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시 전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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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시에는 윤동주 시인의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고향과 그 곳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슬퍼하면서도 그는 '부끄러움'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그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두 작품은 모두 그가 고작 25살 때 지어졌습니다. 25살의 어린 윤동주는 하늘의 별을 새며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25살 그의 밤은 어떤 밤이었을까요?
두 작품을 읽고 1941년 청명한 어느날 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윤동주 시인을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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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시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문학은 보통 눈으로 읽는데요, 소리로 들으니 윤동주 시인의 그 울림이 더 잘 느껴져서 좋앗습니다. 책으로 읽어도 물론 좋지만, 아래 소개해 드리는 영상을 통해 음성으로도 시를 접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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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윤동주 시인의 언어는 무엇이었는지를 알기 위해 그의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보통 소설은 한 번만 읽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시는 읽고 또 다시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알게 된 윤동주 시인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언어를 통해 다시 시를 읽어보며 그가 시를 쓰며 느꼈던 감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특히 <별 헤는 밤>과 <서시>를 반복해 읽으며 청년 윤동주 시인의 결연한 의지와 고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고 그의 생애를 쫓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문학이 가진 힘을 누구보다 믿었던, 자신이 느낀 바를 글로 옮겨 후손에게 울림을 주었던, 시인 윤동주의 삶은 짧지만 아름답게 불타올랐습니다. 그의 삶과 시를 읽다보면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신가요?
**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다음 주 마지막 솔잎 뉴스레터가 발송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솔잎 뉴스레터에 많은 사랑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 마지막 회차로 찾아뵙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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