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호 에필로그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레바퀴 아래서>의 에필로그 콘텐츠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지난 프롤로그 콘텐츠에서 헤르만 헤세의 인생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는데 이 내용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책의 내용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다들 재밌게 읽으셨나요? 내용을 전혀 모르고 보신 분들은 아마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약간 충격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
이번 에필로그 콘텐츠에서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를 짓누르던 수레바퀴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를 억압하는 수레바퀴는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예정이에요. 다들 다시 한번 <수레바퀴 아래서>에 몰입해서 재밌게 콘텐츠를 감상해주세요 💨💨
앗, 참고로 오늘도 역시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으셨다면 완독 후 콘텐츠를 감상해주시길 바라요! (스포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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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시며 실제로 수레바퀴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거의 없으실 거예요. 실제로 '수레바퀴'라는 단어는 아래와 같이 작품 속에서 딱 2번만 나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레바퀴 아래서>가 제목인 것을 보면 이 '수레바퀴'는 헤르만 헤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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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한스와 교장 선생님의 대화
"그렇다면 난 정말이지 짐작할 수 없네. 어딘가에 문제가 있긴 있을 텐데 말야. 자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나한테 약속해 주겠나?"
한스는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 놓았다. 교장 선생은 그를 엄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6장 한스와 엠마의 첫 만남
한스는 갑작스레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엠마가 빨리 가 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뜰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웃기도 하고, 재잘거리기도 하고, 어떤 농담이라도 재치 있게 슬쩍 받아넘기는 것이었다. 한스는 부끄러운 나머지 그만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당신'이라는 존칭을 해야 하는 젊은 아가씨들과 사귄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쩐지 끔찍하게 여겨졌다. 더군다나 이 아가씨는 지나치게 활달한 수다쟁이였다. 더욱이 그녀는 한스가 옆에 있거나, 그가 수줍어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당황한 나머지 수레바퀴에 치인 달팽이처럼 촉수(觸手)를 움츠리고 껍질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짐짓 싫증 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방금 누군가가 죽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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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수레바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스와 교장 선생님의 대화를 통해 이 수레바퀴가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한스에게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며,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합니다. 즉, 수레바퀴는 한스가 지쳐있을 때 그를 짓눌러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그를 뒤쫓아오는 압박을 의미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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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배경이 되었던 마울브론 신학교(수도원)의 전경 ©UNESCO Wolrd Herit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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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스를 힘겹게 하던 수레바퀴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한스의 삶을 돌아보며 함께 알아볼까요?
어린 시절 한스는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들을 비롯해 온 마을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학생이었어요. 한스는 실제로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의 국가시험을 합격했죠. 한스는 이러한 주변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능력을 가졌었고 그 스스로도 계속 공부를 하며 지내는 것에 큰 의문을 갖지 않았어요. 심지어, 그는 신학교에 가서도 다른 학우들보다 앞서고자 하는 야망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작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본인도 알지 못했어요. 이미 이때부터 한스의 뒤에는 수레바퀴가 굴러오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고 처음엔 목표했던 대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스는 하일너라는 자유분방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 하일너와 함께 지내며 주변의 기대와는 다른 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대를 한몸에 받던 모범생에서 어른들께 걱정을 끼치는 문제아가 된 것이죠. 하일너가 더 이상 학교로부터 억압받는 것을 거부하고 학교를 탈출 한 뒤, 유일한 친구를 잃은 한스는 더욱 갈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결국, 한스는 학교 공부와는 더욱 멀어졌고 끝내 신학교에서 나와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 시기 한스는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수레바퀴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느끼고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겪지 않았나 싶어요.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다시 한번 방황했어요. 구둣방 플라이크 아저씨는 이런 한스에게 과즙 짜기 일거리를 주었고, 한스는 이때 처음으로 엠마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느끼지만 갑작스럽게 엠마가 떠나며 고독에 사로잡히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정서적으로 힘든 시기, 한스는 어린 시절 친구인 아우구스트를 따라 기계공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작품 속에서 한스는 아래와 같이 고뇌하며 허망함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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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고독에 사로잡혀 고뇌하는 한스
학교며 교장 선생이나 수학 선생의 사택, 플라이크 아저씨의 일터, 혹은 목사관을 지날 때에 무척이나 비참한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다. 공부에 흘린 숱한 땀과 눈물, 공부를 위하여 억눌러야 했던 자그마한 기쁨들, 자부심과 공명심, 그리고 희망에 넘치는 꿈도 이제는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이 모두가 다른 학교 친구들보다 뒤늦게 하찮은 견습공이 되어 주위 사람들의 놀림을 받으며 작업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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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스 기벤라트의 이야기도 차츰 마무리가 되어가는데요, 혹시 다들 마지막 장면 기억하시나요? 아우구스트를 비롯한 다른 기계공들과 술을 마시던 한스는 강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작품에서 한스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없지만, 그의 죽음은 그를 뒤쫓던 수레바퀴가 마침내 그를 따라잡아 짓눌러 생긴 결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스는 더이상 어린 시절과 같이 빠르게 수레바퀴로부터 빨리 도망칠 수 없었고, 그 수레바퀴도 이전처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즉, 한스를 압박하던 주변의 시선과 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그의 내면에 자리한 정서적 불안과 고뇌가 끝내 안타까운 결말을 가져온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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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를 읽다보면 제2의 주인공은 하일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느낀 대로 작품 속 인물들의 인생을 길에 비유해보겠습니다. 한스의 인생은 샛길 하나 없는 1차선 직선 도로였어요. 뒤에서는 물론 거대한 수레바퀴가 그를 뒤쫓고 있어요. 그리고 이 도로는 잘 포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양옆에는 절벽이 있어 자칫하면 끝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겁니다. 빠르게 직진만 하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중간에 잠시 쉬거나 다른 길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하일너의 인생은 어떨까요? 하일너의 인생은 산길이었어요. 물론 그의 뒤에서도 수레바퀴가 굴러오고 있어요. 정돈된 길로 가면 비교적 큰 문제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겠지만, 산길에는 다양한 경로가 있어요. 어떤 길은 아예 예측할 수조차 없고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기도 해요. 그러나, 그렇기에 뒤쫓던 수레바퀴를 따돌릴 수도 있고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경로를 고민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하일너는 마울브론 신학교를 탈출하며 그의 뒤를 따라오던 수레바퀴를 무시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 것이죠. 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나를 뒤쫓던 수레바퀴가 없어졌다고 해서 마냥 편한 것은 아닐 거예요. 산길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작품에서는 하일너가 학교에서 탈출한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어요. 한스가 정말 목적지에 도달했는지, 그는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리고 사실 하일너가 한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면 한스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몰랐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로 가고 싶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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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19세기 후반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그럼 21세기 대한민국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당연히 당대 독일보다 현재의 우리나라가 사회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해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두 사회가 갖고 있는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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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서, 이는 교육 현장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삶의 수레바퀴는 존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수레바퀴가 없는 삶이 항상 좋을까요? 누군가에겐 수레바퀴가 목표로 향하기 위한 특별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고, 이러한 압박이 정도가 지나치지 않다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중요한 것은 내 뒤에 수레바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떻게 이겨내며 살아갈지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는 것 같아요. 한스도 사실 주변에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었었어요. 구둣방 플라이크 아저씨는 한스가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한스에게 수레바퀴에 쫓기는 삶을 경고했어요. 이때 한스가 플라이크 아저씨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삶에 대해 고민했다면 결과는 또 달랐겠죠? 우리도 지금 내 뒤에 수레바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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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수레바퀴 아래서>를 다 읽으셨나요? 그 뒤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으시다고요?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읽어보실 것을 강력하게 추천해 드립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는 모두 헤르만 헤세가 삶에서 얻은 깨달음이 투영된 책으로 그의 신념과 철학을 배워볼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들은 각각 1906년, 1919년, 1922년 쓰였습니다. 위 문단에서 헤르만 헤세의 인생을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 기억 나시나요? 그가 인생에서 겪은 일들과 그로 인한 영향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각 작품을 순서대로 읽어보며 그가 어떤 고민을 했을지, 그리고 이것이 각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을지 생각해 보며 읽어보시면 더 흥미롭게 작품을 바라볼 수 있으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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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에필로그 콘텐츠 '우리를 짓누르는 수레바퀴'는 재밌게 읽어보셨나요? 이번 선정 도서와 콘텐츠가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를 알아가고 다른 책들도 읽어보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수레바퀴는 무엇일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 보시는 보람찬 독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올해 7월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는데요, 비 내릴 때는 다들 실내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오늘도 솔잎의 콘텐츠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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