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호 프롤로그 콘텐츠를 보내드립니다 :)
제목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작가 |
윤동주 |
분류 |
시 |
출간연도 |
1948년 |
독서 시간 |
2시간 |
분량 |
🌝🌝🌚🌚🌚 |
난이도 |
🌝🌝🌝🌚🌚 |
버즈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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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량: 특정 내용 혹은 이슈가 온라인에서 언급된 횟수 서 언급된 횟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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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솔잎입니다. 곳곳에 단풍잎으로 물든 풍경을 보고 있자 하면 가을이 다가왔음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
솔잎 구독자분들은 이런 가을 날씨에 어떤 취미를 즐기고 계신가요? 요즘 같은 날씨에는 소풍, 조깅, 등산 등과 같은 아웃도어 활동들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을에 가장 좋은 취미는 독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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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은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읽기 좋은 시집을 골라보았습니다. 누구보다 하늘을 사랑했던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입니다. 윤동주라는 이름은 아마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민족 시인 중 한 명인데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들을 묶어 1948년에 발간한 시집입니다.
윤동주의 시는 그의 삶을 먼저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오늘 콘텐츠를 통해 그의 생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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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북간도 지역은 현재는 중국에 속해 있는 지역인으로, 대표적인 한인 촌락이었어요.
북간도는 윤동주에게는 고향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의 시 속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요, <별 헤는 밤>에는 고향 북간도에 대한 그리움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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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 <별 헤는 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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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15살 때 첫 시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첫 작품의 수준을 보았을 때 15살 이전부터 시를 썼다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의 첫 시로 알려져 있는 <초 한 대>라는 작품인데요, 중학생이 쓴 시라고 하면 다들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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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한 대
초 한 대 -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꺠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暗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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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초가 자신의 몸을 태워 향내를 내는, 그런 희생적인 모습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대상에 문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자신만의 분위기로 표현하는 모습에서 성숙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의 시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윤동주의 시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어요. 아래 글을 보면 모든 것에 대해 순순히 수긍하던 윤동주가 단 하나 고집이 있던 것이 바로 시였던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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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돈 좀 있나" 옹색한 친구들은 곧잘 그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노리었다. 그는 있고서 안 주는 법이 없었고, 없으면 대신 외투든 시계든 내주고야 마음을 놓았다.
(중략)
이런 동주도 친구들에게 굳이 거부하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동주 자네 시 여기를 좀 고치면 어떤가" 하는데 대하여 그는 응하여 주는 때가 없었다. 조용히 열흘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곰곰이 생각하여서 한 편 시를 탄생시킨다. 이미 보여 주는 때는 흠이 없는 하나의 옥이다. 지나치게 그는 겸허 온순하였건만, 자기의 시만은 양보하지를 안했다.
- 강처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최초본에 실린 발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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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후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 문과에 진학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윤동주의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쓰인 시기입니다. <자화상>, <새로운 길>, <태초의 아침>, <별 헤는 밤>, <서시> 등이 이 시기에 집필된 시들이죠.
연희전문학교는 윤동주가 문학과 관련된 좋은 인연을 맺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바로 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최초본에 발문을 남긴 강처중은 윤동주의 입학 동기로, 윤동주의 시를 지켜내고 보관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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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윤동주가 남긴 자취들이 서울 곳곳에 숨어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윤동주가 살았던 연희전문학교 기숙사가 있는데요, 현재는 윤동주 기념관이 되었다고 해요. 또, 종로에는 윤동주 하숙집터도 남아 있다고 하니 근처 방문하실 기회가 생기신다면 한 번 보고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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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 집으로 돌아와 잠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을 원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는데요, 그의 아버지의 권유로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해 그는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는데요, 윤동주는 이로 인해 엄청난 치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942년에 쓰인 <참회록>이라는 시에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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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얼골이 남어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는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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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와 같은 부분 등을 보면 그가 이름을 바꾸며 느꼈던 부끄러움 등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는데요, 다음 연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보자"란 대목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의 의지 등이 잘 드러나고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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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그가 27세가 되던 해에 윤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됩니다. 이듬해 그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게 되고, 1945년 2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조국 광복이 불과 반년밖에 남지 않은 시기였죠.
그렇게 그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조국의 독립을 갈망했음에도 끝내 독립의 꿈을 현실로 맞이하지는 못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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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삶을 그려낸 영화가 있습니다. 2016년에 개봉한 강하늘, 박정민 주연의 영화 <동주>입니다.
개인적으로 윤동주의 시는 그의 삶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와닿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책을 읽어보시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윤동주의 삶을 살펴보시는 게 좋은데요, 가장 가볍게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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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윤동주와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그의 고종사촌인 송몽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증이 잘 되어 있고, 윤동주의 시가 작품 속에 적절히 녹아 있어 정말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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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어보면 더 재밌게 책을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
✅ 시가 쓰인 시기와 그 시기 윤동주의 상황을 매칭 시켜보면서 읽어보세요.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 여러분도 힘든 짐을 많이 짊어지고 계실 겁니다. 여러분의 상황을 윤동주의 시에 대입해 보세요. 시를 통해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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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처를 위로해준 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한 청년 시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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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민족 시인 윤동주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죠.
오늘날 우리들이 윤동주의 시를 읽고 같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 비 오는 날 우산이 없는 아주머니에게 우산을 건내지 못한 일, 소중한 사람을 소홀히 한 일. 그가 그의 삶 속에서 부끄러움과 고뇌를 느꼈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러한 감정들을 느낍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 삶 속의 부끄러움과 아픔을 되돌아보고 위로받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주에도 재밌는 콘텐츠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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